검색결과
-
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89)<br>원주어리랑, 산은 멀고 골은 깊어어리랑 어리랑 어러리요 어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산도나 멀고요 골은 깊은데 누구를 보려고 나 여기 왔나. 감상 문양지에 작품을 할 경우는 바탕의 문양을 살려가며 글자를 포치한다. 글씨가 주가 되고 문양은 배경이 되기 때문에 배경은 옅어서 이미지만을 드러내야 한다. 도드라지거나 진한 그림은 부적합하다. 산수가 그려진 풍경에 소가 내를 건너는 그림 위에, 노랫말에서 ‘산은 멀고 골은 깊어’를 뽑아 돋보이게 썼다. 두메산골로 시집온 여인의 적막감을 표현하고, 오른쪽 아래에 사각의 유인(‘일어나 빛을 발하라’)을 찍어 전체 화면의 균형을 잡았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
'동두천아리랑제’, 가능성 확인되었다‘제2회 동두천아리랑제’가 지난 25일 오후 5시 시민회관 공연장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동두천아리랑보존회가 호국보훈의 달에 마련한 625전쟁 정전 70주년 기념하는 동두천아리랑제이다. 토속아리랑 '이담어러리타령' 8수, 창작아리랑 '동두천아리랑' 10수.... 2곡이 발표 되었다. 동두천에는 전래되는 어러리(아라리)와 본조아리랑 선율이 불려진 것이다. 이 아리랑을 유은서 회장이 아리랑학회 자문을 받고 현지 답사를 병행하여 발굴하고 복원하여 동두천 시민들에게 지난해 제1회 동두천아리랑제에서 알렸다.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 등재이후 유은서 회장은 아리랑학회에서 동두천에도 아라리가 불려졌다는 학술적 근거를 가지고 경로당을 찾아서 발굴작업을 수행했던 것이다. 유회장은 경기북부 지역에서 30여 년간 국악 활동을 하면서 북한강 수계를 따라서 불려지는 포천어러리, 연천어러리(아라리) 등에 주목했다. 이후 '경기아리랑에 관한 연구'로 국민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동두천 관내 많은 경로당을 찾아가며 귀담아 들었던 아라리를 정리하였고, 8년 전 동두천지역 어르신들로부터 이담이라는 옛 지명이 담긴 이담어러리 30수를 찾았다.이렇게 동두천에도 향토민요인 이담어러리타령과 아리랑이 채록되었다. 현재 동두천아리랑보존회에서 향토민요 ‘이담어러리타령’이 전수되고 있다. 이담어러리타령 (소리:유은서/채록:기미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나를넘겨주게 아리랑 고개는 열두고개 아리랑 고개로 날만 넘겨주게 올라가는 신감사야 내려오는 구감사야 구관이 명관이라고 말 전하거라 내가 넘어가는 고개는 한 고개라 우리 님 고개는 열두 고개 이담면 흐르는 물을 안고 도는데 우리집 저 멍텅구린 날 안고 돌줄 모른다 해는 지는데 갓을 쓰고 어디를 가오 첩의 집에 가거들랑 나 죽는 꼴 보고 가소 앞집의 처녀는 시집을 가는데 뒷집의 총각은 목메러 간다 여보게 총각아 목메러 가지 말고 이내몸 시집간데로 몸살러 오게 아리랑사(史)에서 6.25전쟁과 동두천은 깊은 관계가 있다. 주한 미군 제7사단가 '아리랑', 안흥리 '아리랑다리', 동두천 위안부 모임 '아리랑'이다. 1953년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동두천 보산리에 주둔한 주한 미군 (캠프 케이시)제7사단가가 '아리랑'이다. 특히 동두천 양공주로 불린 위안부들의 모임도 '아리랑'이고, 1964년 3월 10일 준공이 된 주한 미군 제7사단 장병들이 지어준 '아리랑다리'이다. 기록에 의하면 아리랑다리는 "64년 3월 10일 경기도 양주군 동두천읍 안흥리에 주한 미 제7사단 장병들이 손수 지었다. 제7사단장 그레이 소장이 양주 군수에게 '아리랑다리'를 지어서 인계했다. 폭 2m, 길이 120m로 미국과 한국의 굳은 우정을 기억하기 위해 아리랑다리라고 지었다"(대한뉴스 제 460호)라고 한다. 당시 동두천에서는 2만 6천명이나 되는 주한 미군 제7사단의 단가 아리랑이 대유행이었다고 한다. 미군들과 주민들이 만나면 손 붙잡고 아리랑을 자주 불렀다고 한다. 혹자는 출렁거려서 아리랑다리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당시 미제 통조림 깡통이 줄줄이 매달려 있어서 '깡통다리'라고도 불려졌다고 한다. 이렇게 서양속담에도 "사랑받는 아이는 이름도 많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1967년에 '아리랑다리'라는 영화로도 나왔다. 그런데 1972년 노후한 아리랑다리를 헐고 현재는 새로운 다리를 짓고서 안흥교라는 이름을 부쳤다. 지난 6일 동두천아리랑보존회원들과 함께한 동두천아리랑답사에서 아리랑학회 기미양 연구이사는 "이러한 역사적 의미에서 관내 역사 유래에 대한 지명이나 시설을 적극 발굴하여 안흥교를 다시 아리랑다리로 복원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당시 아리랑다리를 지어주고 1971년 3월 2만명의 미군들이 철수하면서 제7사단가로 불린 아리랑을 미국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전해 주었다고 한다. "코리아라는 나라는 전쟁 페허 속에서도 남녀노소가 모였다 하면 아리랑을 부르면서 고난을 이겨내게 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고 설명하면서.....(주한 미군 제7사단에 3대가 복무한 마이클람부라우 박사(손자) 증언) 당시 동두천은 지나가는 개들도 입에 파란 달러를 물고 다닌다고 했다. 그만큼 급작스럽게 자본 집중과 유입으로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1950년 전쟁이후 동두천이야말로 아리랑이 가장 많이 불려진 지역이기도 하다. 군가로 불린 아리랑은 자연스럽게 미군들과 위안부들에 의해 불려져서 미국으로 건너가서 세계적 뮤직션들이 아리랑 음반을 발매하고, 미국 동포들까지도 아리랑을 애국가처럼 불렀다. 지금도 6월 보훈의 달 뉴스에서 한국을 다시 찾는 미군 참전용사들은 의례적으로 당시를 기억하며 아리랑을 부르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유은서 회장은 "새로 작창한 동두천아리랑에는 동두천 미군 기지촌의 애환이 담겨 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반 강제동원이나 속여서 끌려온 어린 여인들의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그들의 한을 아리랑으로 정화하고 치유하시기를 바라며...."라고 설명하면서 어느새 울컥 눈물을 흘렸다. 옆에 있던 사람들의 눈에도 함께 눈물이 고였다. 작년에서부터 그분들을 무대에 모시려고 수차례 청을 드렸는데 아직까지는 만나주기를 꺼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는 세상인데...아직까지 그분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보존회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희생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오늘을 동두천아리랑제 개최일로 정례화 하기로 하였다. 식전행사로 풍물패 밝달이 지신밟기와 풍악을 울려 신명과 흥을 올렸다. 이어 동두천에서 전래되고 있는 향토아리랑 이담어러리타령, 창작아리랑 동두천아리랑이 첫 막을 열었다. 동두천아리랑 (소리:유은서/채록:기미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넘어간다(후렴) 우리낭군 먼동이 트면/모랫말가고요 아낙네들 신천물/빨래터에서 놀고요 저기가는 기차는/검은연기만 나고 이내가슴 타는데도/검은연기가 나네 동산올라 구경하니/길가는행인왜모르나 천하일색 나하나와/놀다가지못하고 고추당추 맵다해도/시집같이나 매울소냐 못살겠네 영죽겠네/이내시집은못살겠네 자재암 풍경소리는/ 바람따라 울리고 소요산 공주봉에는/ 바람소리 좋구요 만경창파방을삼고/연화수다가 옷을입고 이리떠도 둘이나둥둥/저리떠도 둘이쌍쌍 꽃이야 곱다마는/가지 높아서 못꺾었나 꽃은 꺾어/머리에 꽂고/잎은흝어다 입에물고 미군부대 앞마당에는/민들레꽃 고운데 꽃답던 이내청춘/어느새 시들어졌네 아리랑다리는 깡통강통/깡통다리라네 아리랑다리는 출렁출렁/출렁다리라네 동두천아리랑보존회 유은서 회장과 회원들이 지난해 동안 갈고 닦은 가량을 펼쳤다. 2019년 함양산삼엑스포에서 음반으로 발매된 '황석산아리랑'(작곡:양평수, 소리:유은서)도 함께 선보였다. 한국무용 '살풀이'(이해영예술단), 변검, 동동구루무(송해문화예술진흥회), 한국무용 '강원도아리랑'(늘춤무용단), 인형극 (정승재)이 펼쳐졌다. 이어서 (사)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이사장과 이병일(특별회원), 회원들이 소극으로 꾸며서 배역을 맡고 들려준 왕십리아리랑과 사할린아리랑을 생생한 감동으로 선사하여 많은 박수를 받았다. 따뜻한 조선을 놔두고/사할린에는 왜왔나 왜왔나 풍파 사나운 바다를 건너/ 한많은 남화태 징용왔네 안성아리랑보존회 조명숙(안성경서도잡가 보유자)과 회원들이 1911년에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안성아리랑을 선사했다. 조명숙 명인은 안성권번이신 어머니를 따라서 70 평생 노래만 불렀다. 뛰어난 공력으로 무대를 신명나고 신나게 만들어서 초청 단체 중 가장 많은 박수와 관심을 받았다. 다음날 아침 관객으로 오신 귀명창들에게 전화가 왔다. '귀한 소리 들었다고" 동두천 시민들에게 서울경기 지역과 사할린에서 향유하고 있는 아리랑들을 선보였다. 안성아리랑, 동두천아리랑, 왕십리아리랑, 사할린아리랑과 함께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선사했다. 총 10개 단체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이날 박형덕 동두천시장, 김승호 시의회 의장을 비롯해 한국국악협회 동두천지회 김경수 지회장, 김성보 대한노인회 동두천시지회장, 동두천여성단체협의회 윤한옥 회장, 동두천농업협동조합 목현균 조합장, 동두천시종합자원봉사센터 형남선 센터장, 안성아리랑보존회 조명숙 회장, ㈔왕십리아리랑보존회 이혜솔 회장, 이무성 화백, (주)국악신문 관계자, 전 사할린한국교육원 이병일 원장 등 300여 명의 관객들이 함께했다. 박형덕 동두천시장은 시민들에게 "동두천아리랑이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전했다. 김승호 동두천시의회 의장은 "아리랑은 우리 한민족의 정체성과 아이덴티티를 대표하는 인자"라고 전했다. 대한노인회동두천지회 김승호 회장은 "이제 두 돐을 넘은 동두천아리랑의 발전을 위해서는 오랫동안 지역 전통문화 창달을 위해 온 김경수 동두천국악협회장의 배려와 지원을 부탁한다"고 전했다. 한편 동두천 전통문화 발전에 힘쓰고 있는 한국국악협회 동두천지부 김경수 지부장은 "다른 지역에 비해 늦었지만 동두천 지역 아리랑의 발굴과 복원작업을 통해 동두천의 역사성을 '동두천아리랑'으로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동두천아리랑보존회는 지난 2012년 12월에 세계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리랑과 함께 향토아리랑 동두천아리랑의 위상을 널리 알리고, 아리랑을 통해서 지역문화 공동체 결속에 기여하는데 목적을 둔 비영리 문화단체다. 또한 아리랑 3대 정신(저항, 대동, 상생)을 계승한다. 지난 12월 등재 10년을 기념하기 위해 정선에 세운 인류무형문화유산아리랑비에 동두천아리랑이 새겨져 있다. 유은서 회장은 "이번 동두전아리랑제를 위해 동두천아리랑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아리랑답사를 회원들과 수행하면서 더욱 아리랑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내년에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주제의식을 구축하고, 스토리텔링 작업으로 다듬어서 소극으로 동두천아리랑을 올려보고자 한다."라고 전했다. 제2회 동두천아리랑제는 동두천아리랑보존회가 주관하고 동두천시, 동두천시의회, 전국아리랑공연예술연합회, (주)국악신문, 동두천예총, 대한노인회동두천지회, 동두천농업협동조합이 후원한다.
-
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 (137)태기산 곰치 나물은 나지미 맛만 같으면 병자년 그 숭년에도 봄 살아가리. 노랑대가리 얼키 설키에 지붕박 상투 어린 낭군 언제나 키워서 내 낭군을 삼나. 어리어리랑 스리스리랑 어러리가 났네 얼었다가 녹아 지니는 봄철이로구나. 작품감상 아리랑의 노랫말은 민간에서 제 멋으로 만들어져 불렸다. 시대마다, 지역마다 사용하는 용어가 달랐고, 생활환경이나 지식 정도에 따라 용어의 수준도 갖가지였다. 더러는 이 말 저 말 뒤섞여 문맥이 얼크러지기도 하는데, 여러 가지 한을 한꺼번에 터뜨리다 보니 그럴 만도 하였으리라. 이 노래도 노랫말이 어지럽다. 나지미는 친숙하다는 일본말인 듯하고, 노랑대가리 지붕박 상투도 귀에 설다. 흉년을 곰치 나물로나 넘겨야 하는 아낙의 절박함과 봉두난발의 철부지 어린 신랑에 대한 속절없는 젊은 아낙의 기대가 아리다. 얼었던 대지가 녹는 봄이 되면 형편이 좀 나아지려나. 후렴구의 가락을 따라 민체로 썼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
동두천에도 향토민요 '이담어러리타령'이 불렸다.
-
아리랑의 개념과 범위 김연갑/(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아리랑’이란 말은 다면체의 언어이다. 그런 까닭에 쓰임과 의미도 다양하다. 그 실상의 하나가 북한에서의 ‘아리랑민족’이라는 용어의 의미와 사용이고 최근 대표적인 트롯 가수 나훈아가 ‘트롯 가요’의 장르 명을 ‘아리랑’으로 부르자는 제안을 한 경우이다. 전자는 민족동질성을 말하는 ‘한민족’이란 개념의 변용인듯한데, 결과적으로 남북간의 정치적 모호성을 드러내는 용어로 쓰이고 있고, 후자는 마치 향찰 표기의 신라 가요를 ‘향가’로 부르는 것과 같은 논리인데, 이런 주장의 배경은 아마도 우리가 가장 널리, 가장 좋아하는 가요 장르를 우리식으로 불러야 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어떻든 오늘에서 아리랑은 곡명이나 특정 장르 명칭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이념의 담론으로까지 확장되어 쓰이고 있다. 그만큼 그 의미가 간단치 않다. 아리랑의 범위는 곡명에서 ‘아리랑’을 쓰거나 여음(뒷소리나 앞소리)에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나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리랑····’ 또는 ‘아라리가 났네’를 쓰거나 향토 가명이나 변이형인 ‘아라성’·‘아(어·우)리’·‘어러리’를 쓰는 것 등이다. 그리고 기층음악권 가운데 아리랑과 같은 곡조를 쓰는 것이 있는데 이 경우가 정선아리랑 곡조인 ‘한오백년’ 등이 있는데, 이 역시 포함된다. 우리는 여러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언필칭 아리랑의 종류와 그 사설을 들어 ‘50여 종에 6천여 수’라고 말하는데, 여기에는 여러 지역의 이름을 딴 것(진도·밀양 등), 기능에 따라 부르는 것(뗏목아리랑), 후렴의 음가를 명칭으로 한 것(‘아라성’)과 음악적 특성을 이름에 얹어 부르는 것(긴아리랑·엮음아라리) 등이 있다. 특히 조국을 떠나 해외에 사는 동포들이 지어 부른 창작 아리랑(중국 ‘기쁨의 아리랑’, 일본 ‘나의 아리랑’, 미국 ‘민들레아리랑’)이나 예술가곡(조수미의 ‘아리 아리랑’, 최영섭 작곡 ‘의병아리랑’)이나 국악가요(채치성 작곡 ‘꽃분이네야’)나 대중가요(조용필의 ‘희망의 아리랑’, 한 돌의 ‘홀로아리랑’)등을 포함하고, 또한 인접 장르에 삽입되어 불려지는 것(장소연 작 연극 의 삽입곡)들까지도 아리랑의 범위에 포함한다. 그런가하며 영화(나운규 감독 ·연극(박승희 워작 ·무용(최승희·조택원 등의 작품 )같은 무대작품 뿐만 아니라 담배 같은 생활용품 등도 있다. 이들 역시 아리랑의 범주에 포함된다. 특히 국내 뿐만 아니라 일본의 탄광이나 군사시설 구축 현장 주변에 있는 ‘아리랑고개’ 같은 민족사의 아픔을 담고 있는 지명 유래 같은 것도 포함됨은 물론이다. 이와 같이 ‘아리랑’에는 중층적인 의미와 역사성이 담겨 있어 간단하지가 않다. 이를 굳이 나눈다면 광의(廣義)와 협의(狹義), 그리고 최협의(最狹義)로 구분할 수 있다. 광의의 아리랑은 정선아리랑(아라리)을 그 연원으로 갖는 민요 장르와 여기서 확산된 모든 음악양식의 작품군(作品群)과 여기에 타(他)장르인 문학·영화·연극작품 등은 물론 ‘아리랑담배’나 ‘아리랑 라디오’나 잡지 과 같이 생활 속에 확산된 문화현상까지도 포함된다. 협의로는 민속음악으로서의 민요 아리랑만을 말하는 경우이다. 그러니까 나름대로의 기층성을 확보하고 전승력을 갖고 불려지는 아리랑을 말하는 것이다. 이들의 ‘아리랑’이란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테스트로서의 아리랑으로, 곡명에서 ‘아리랑’을 쓰고 후렴에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를 쓰는 민요 아리랑을 말한다. 소위 4대 아리랑(서울·정선·밀양·진도)을 비롯해서 중원·제주·울릉도아리랑 에다 ‘신아리랑’, ‘엮음아리랑’ 등이 있다. 최협의의 아리랑이란 개별적 수식 없이 그냥 ‘아리랑’이라고 부를 때의 것으로 1920년대 나운규 감독의 영화의 주제가로 탄생하여 서울·경기 지역에서부터 불려지기 시작하여 ‘신아리랑’으로 불리다 1940년대 ‘아리랑’ 또는 ‘본조아리랑’으로 대표성을 부여 받아 불리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아리랑의 대표 또는 가장 중심적인 아리랑은 전한민족 구성원과 전 세계인에게 알려진 세마치장단에 2행 1련에 후렴이 있는 정형성을 갖고 불리는 아리랑이다. 이로부터 ‘아리랑’이란 곡명은 같지만 곡조나 사설이 다른 많은 버전이 있게 되었다. 이는 아리랑의 특징이기도 한 같으면서도 다른 아리랑, 다르면서도 같은 아리랑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아리랑을 북한에서는 1920년대의 항일 민족운동에 영화이 크게 기여했고, 그 주제가이 해외 항일 빨치산 활동에 함께 했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1920년대 아리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같은 여러 명칭 중에 가장 보편적인 것은 ‘본조아리랑’ 또는 그냥 ‘아리랑’이다. 우리가 개별적인 아리랑을 지칭할 때는 바로 이러한 최협의(最狹義)의 아리랑을 말하는 경우임을 알아야 한다. 사실 여타의 아리랑들은 각각의 역사성이나 자체적인 가치 평가에 의해 그 존재가 알려졌다기보다는 본조아리랑의 명성, 구체적으로는 다음의 사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명난다. 에서 민족감정으로 환치되어 확산되면서 민족사적 가치를 부여받게 된 것이다.
-
명사초대ㅣ 김재홍 의원 나의 아리랑 小考(소고)명사초대 / 김재홍 의원 나의 아리랑 小考(소고) “한국 고유의 전통음악인 '아리랑’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1위에 선정됐다. 한국인이라면 모두 이 노래를 알것이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작곡가들로 이루어진 세계 아름다운 곡 선정하기 대회에서 지지율 82%라는 엄청난 지지를 받고 아리랑이 선정됐다. 선정과정중에서 단 한명의 한국인도 없었고 심사했던 이들도 놀라는 눈치였다. "아리랑" 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나에게 깨우쳐줬다." '듣는 도중 몇번씩 흥이났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감동적이다.' 이들 모두 처음 듣는 곡이었다고 했다. 아리랑을 연주한 이는 전자바이올리니스트 유진 박이 연주했다.”는 2003년 AP통신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선정됐다는 기사가 실였다. 아리랑 ! 이만큼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노래도 드물것이다. 이 아리랑 연합회를 진두 지휘할 이사장으로 김재홍 의원이 지난 10월 16일 추대되어 만나보았다. ▶ 한완상 선생에 이어 만장일치로 위촉받았으며 추대식이 아주 특별하게 했다는데요. ■ 예 감사합니다. 이사장에 추대받고 마침 정선아리랑 축제와 (사)한민족아리랑연합회 정선지부 현판식에 참석하게 됐다가 정선에서 아주 극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 2005년도에 많은 아리랑 행사와 기획을 한다는데요. ■ 하나는 국가 무형문화재 지정이구요. 둘째는 비무장지대 남북아리랑 축전을 개최하고자 합니다. 세째는 세계무형문화재 축전으로 아리랑페스티벌을 개최입니다. 네째는 문화재청 산하 아리랑연구소 및 음원자료원 설치입니다. 그리고 다섯째로 아리랑 편찬과 전수사업입니다. ▶ 아리랑 외에 관심있는 국악 분야가 있다면요. ■ 아리랑도 전통문화예술의 한 뿌리입니다 또 제가 문화관광위원회에 소속된 의원입니다. 그래서 국악과 관련된 콘텐츠입니다. 첫째로 방송이나 신문이 되겠지요 특히 방송은 실시간에 국민들에게 전파됩니다. 제가 알기로는 국악방송이 있는데 전국적으로 방송이 되지않고 서울, 경기 전북지역만 송출이 된다고 합니다. 신명나고 흥겨운 우리국악을 전국에 계시는 국민들이 향유하도록 국악방송을 전국에 송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노력하겠습니다. ▶ 동아일보 해직기자로 또 복직하여 논설위원으로 계시고 북한전문가로 익히 알려지셨는데요 국악을 통한 교류나 계획이 있다면요. ■ 예, 우선적으로 그 하나가 비무장지대 남북아리랑 축전이 되겠지요. 예를 들어 1991년의 남북 단일팀 단가로 아리랑이 됐지요. 또한 판문점 회담 역사에서 유일한 동일안 도출은 아리랑입니다. 아리랑은 남북 정치사에서나 문화 교류사에서 획기적이면 아리랑 역사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 혹 아리랑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불러 보셨는지요. 다양한 채널이 많은데 아리랑은 배운다거나 체계적으로 배울 생각은 있으신지요. ■ 지난 10월 정선아리랑 축전에서 부른적이 있습니다. 처음에 머뭇거려지만 같이 부르니 가능 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국회내에서 모임을 만들어 체계적으로 배울까 합니다. 리듬 가사 지역정서 다르고 정선, 진도 아리랑 서로 전혀 다릅니다. 지역적 아리랑이 120개정도 있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 언론개혁과 중요성 또한 문화콘텐츠 진흥과 남북문화교류에 관심이 많은신데요. 2005년도 의정 계획이 있다면요. ■ 21세기 선진형 개혁정치를 위한 제4세대 정당론을 가지고 17대 국회에 등원한지 엊그제 같은데 의정활동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됐습니다. 2005년도에는 더욱 열심히 이렇게 일하겠습니다. 1.언론개혁의 마무리 해로 삼고 국민이 바라는 언론개혁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2.문화콘텐츠진흥 및 남북문화교류 사업을 통해서 국가경쟁력 및 서민 경제살리기에 역점을 두겠습니다 3.민족의 노래 ‘아리랑’ 5대 정책사업을 통해 대한민국의 대표적 자랑거리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4.국회 정치 커뮤니케이션연구회를 더욱 발전시켜 국회내 새로운 정책국회, 일하는 국회의 모습을 정립하겠습니다. 5.의원입법 및 현장조사에 의정활동의 중점을 두어 국민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 되도록 하겠습니다. ▶ 최근 국회 문화재청 국정감사 질의에서 김재홍의원(열린우리당·문광위)이 아리랑의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지정과 건립을 제안했다. 이를 계기로 문화재청과 관련 단체에서는 이의 필요성과 지정 방안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에 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씨가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제시했다. 1) 지정의 필요성 가. 아리랑에 대해 우리 스스로의 인식 제고. 이미 세계화한 현상을 이론화 하고, 국가 이미지 제고에 활용하여야 한다. 나. 남과 북 그리고 교민사회의 동질선 회복과 이를 단서로 민족공동체, 민족공영 운영의 단서로 활용한다. 다. 우리문화의 다양성과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된다. 마. 우리 스스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지 않고는, 판소리와 같이 세계 가치 있 는 인류 구전문화 유산으로 등재 요청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 한(韓)민족 동질성(DNA)과 정체성을 오롯이 담고 있는 노래로, 민족 구성원 모두가 ‘민족의 노래’로 꼽는, 세계 유래 없는 노래임으로 그 위상을 제도로 확립시킨다. 이를 세계 유네스코가 인정, ‘세계 가치 있는 인류 구비문화 유산’의 상징어로 인정-(ARIRANG PRIZE)을 제정하였다. 2) 지정 방법 가. 전통성과 기층성, 그리고 전승체계를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는 강원도권·서 울권·경상도권·전라권을 주로 하고, 병행하여 를 통해 교민사회·북 한·창작아리랑지역을 대상으로 하여 포괄 지정한다. 나. 지정에 따른 예능보유자는 지정하지 않고, ‘전수회’ 또는 ‘보존회’를 통해서 전수·연구업무를 담당케 한다. 다. 기 지정 지역, 정선(강원도 무형문화제 1호 지정) 지역 5인, 중원(충북 농요로 지정)4인의 보유자는 일정 기간만 유지 하고, 강릉(‘학산오독떼기’의 한 종목- 동기달 외3인)은 아라리를 분리하여 권역에 포함시킨다. 3)지정 지역 대상 가. 강원도아리랑 정선권(정선·영월·평창·태백(‘아라레이’)·횡성‘어러리’) 강릉권(강릉‘자즌아라리’)·인제 ‘인제 뗏목아리랑’)·춘천 ‘춘천의병아리랑’· ‘강원도아리랑’ 경기·충청권(충북 ‘중원아라성’·여주·이천) 나. 서울아리랑 본조아리랑 긴아리랑 구아리랑 해주아리랑 다. 경상도아리랑 상주아리랑 밀양아리랑 영천·경상도아리랑 울릉도아리랑(김재조) 라. 전라도아리랑 진도아리랑(의신면 돈지리마을 강송대· 박병훈) 제주조천아리랑(조을선 작고·기능자 미확인) 마. 창작아리랑(지속적인 관찰 대상지역) 제천아리랑(‘의병아리랑’ 2000년 공연) 대전아리랑(2002년 음반화) 대구아리랑(2003년 음반화) 바. 북한지역권 삼일포아리랑 통천아리랑 서도아리랑 초동아리랑 창작아리랑-아리랑연곡·경상도·영천 아리랑·통일아리랑·유일팀아리랑·강 성부흥아리랑 등 10여종 사. 해외 교민사회권 일본 오사카지역(김경원) 중국 (박창묵) 미국 L·A(김혜란) 러시아 연해주 ※ 지면 관계상 의 주 업무와 참고 사항 등은 다음 신문에 게제 하겠습니다.